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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청년 대항하며 공산주의 물결 제거(특집)
통일전선 구축하려는 움직임에 항거
2011년 04월 22일 (금) 12:46:44 조회수:3214 이북도민회 kbg0070@dreamwiz.com

 8.15해방의 감격이 채 가기도 전에 우리민족은 국토가 분단되는 아픔을 다시 겪어야 했다.  북한의 공산화를 획책한 소련 주둔군과 김일성 정권에 항거하여 신의주학생반공의거에서 부터 민족의 저항은 불을 뿜기 시작했고, 이 열기는 북한전역을 휘감았다. 이같은 반소학생 전선은 요원의 불길로 평양학생의 반공의거에 이어서 함흥학생 반공투쟁으로 확대됐고, 북한주민들은 연일 반소와 반제국주의를 외치며 김일성 집단의 야욕에 맞섰다. 남한지역 역시 남로당을 중심으로 통일전선을 구축하려는 움직임에 많은 열혈청년들이 대항하며 공산주의 물결을 제거하기 위한 항거를 계속했다. -편집자주-


신의주 학생의거를 비롯해 평양의거, 함흥학생의거 등이 북한전역에 불어닥칠 때 남한에서는 민족세력들이 서서히 결집하며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건립하기 위한 노력을 펼쳤다.

이때 민주진영과 공산진영을 확연히 구분할 수 있는 역사적인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다름이 아니고 바로 모스크바에서 있었던 2차대전 전승국들의 모스크바 삼상회의가 바로 그것이다. 남북한 이 찬탁이다 반탁이다하며 확연히 구분됐고, 신탁통치 반대의 물결속에서 남한지역은 조선학도대가 지금까지의 치안유지 및 구호활동에서 탈피하여 국민들을 대상으로 문화운동과 애국계몽운동 그리고 반탁 자유 민주 투쟁으로 활동반경을 넓히고 폭넓은 활동을 전개했다. 해방 직후 남한사회의 학생운동 모습과 성향을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다.

조선학도대는 일제의 한반도 강점 시절 수많은 학생들이 항일투쟁을 하며 체포되거나 투옥 그리고 시베리아로 강제 유형을 당했던 인물들이 광복후 월남하며 사회적 활동을 펼쳤던 학생들을 총칭해 부르는 이름이다.

이들은 북한지역에서 공산학정과 소련군정의 강압성에 항거해 월남하며 의기투합해 결국 해방후 첫 공식적 단체인 서북학생총연맹을 탄생시켰다. 김인덕, 홍남식, 홍종섭 등이 주도해 탄생한 이 단체는 남한지역에 흩어져 있는 학생조직의 실태를 파악하며 조직을 확대시켜 나갔다. 특히 임시정부의 정치공작대의 지원을 받아 반공 계몽운동에서부터 국대안 반대소요 저지운동, 남노당과의 투쟁, 조선문화대학 분쇄 및 폭동진압 작전과 북한지역의 요인암살 활동 등에 이르기까지 헤아릴 수 없는 엄청난 투쟁을 전개하며 학생운동의 활성화를 이뤘다.

이들은 단순히 이북출신 학생들과 조직을 결성해 활동하는데 그치지 않고 민족사의 정통성을 되찾기 위해 남한출신 학생들과도 연대하며 학생운동의 활동폭을 확대시켜 나갔다. 학생운동을 단순히 지연관계에서 탈피해 이념으로 확산시키고자 하는데 뜻을 둔 것이다.

이들의 남한출신 학생들과 연합의 시작은 조선유학생동맹에서 찾을 수 있다. 박용만, 김호영, 김일환 등이 중심이 된 이 단체는 반공활동과 혼미했던 남한정국에서 자유민주국가를 건설하겠다는 기치를 들며 월남한 학생들과 힘을 합해 공산주의를 철폐시키려는 나침반의 소임을 담당했다.

이어 반탁운동의 선봉인 반탁학련이 발족됐다. 채문식, 이철승, 장순덕 등이 중심이 되어 남한학생운동을 주도했고, 이철승, 송원영, 이동원 등이 중심이 된 전국학련 역시 반탁과 반공의 기치를 높이 들고 많은 애국세력들과 함께 힘을 모아 건국운동으로 확산시켰다. 

하지만 이같은 학생조직이 반공운동을 목표로 우후죽순으로 탄생하자 이에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타났다. 반공운동이 조직적으로 진행되기보다는 산발적으로 진행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 점을 지적하고 방향을 제시한 것은 백범 김구의 환국에서부터 시작됐다. 해방된 그해 11월23일 망명생활 27년만에 백범 김구 선생의 환국은 당시 8.15의 감격이 채 가시지 않은 여진속에 격심한 혼란으로 갈피를 잃고 있던 학원과 학생운동사회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며 활력소가 됐다. 혼란에 빠져있던 여러단체들에게 학생운동의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때마침 모스크바삼상회의가 한국에 대한 신탁통치안을 결의하고 임정을 주축으로 한 반탁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며 학생운동의 방향은 반공 반탁 반제 투쟁으로 그 노선을 통일하게 됐다.

우익학생단체들은 임정이 주도하는 전국반탁 국민운동에 행동을 연계하면서 좌우익의 분열과 학원의 혼란상을 수습하는 상호작용을 활발히 전개했다. 1946년 전반기 격동기에서 민족진영내 학생단체의 난립을 경고하고 통합운동이 바람직하다는 임정의 종용이 있고나서 한국학생단과 건국학련이 우선 통합, 백범선생을 최고지도자로 추대한 대한학련이 발족됐다. 이 당시 학생운동사회는 전년 11월 신의주학생사건의 중심조직이 그리고 그 다음해 평양 등지의 반공 반탁 반제 투쟁의 주역들이 또한 함흥학생사건의 주모자들이 남하하면서 재남 학생운동자들과 서로 웅거하고 있었다.

백범 선생은 학생대표들에게 ‘내외정세를 감안 흩어진 학생단체는 그 어느때보다 통합이 바람직하다. 학생들은 공부에 열심해야 한다’고 간곡한 방향제시를 주었다. 당시 이 자리에는 서북학련의 이원범 위원장, 대한학련의 김철 조직책 등 6개단체의 주역들이 좌석을 같이 했으며 이로써 학생단체의 통합기운은 급속도로 성숙, 해방한국의 학생운동전선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됐다.

임정계의 정통학생단체인 대한학련, 분단조국에 최초로 탄생한 월남 남하 학생의 거점인 서북학련, 전국에 각급학교 조직을 포용하고 있는 대동학생단, 학원소요를 전국 대중고에서 원천봉쇄한 건설학련, 임정의 건국강령을 실천운동으로 하여 해내외에 계도조직을 갖춘 삼균학련, 전국중고등학교의 연합조직인 중등학련, 기타 학생조직, 계몽연수단체 등이 참여 총통합조직체로 전국통일학생총연맹을 결성, 학생단체 및 학생조직군의 전국적 발전적 정비에 역사적 소명에 부응하면서 한국학생운동사에 새 변화의 장을 열었다.

결국 1948년 초봄 이원범, 김철, 신진 등이 이끄는 서북학련, 최서면, 임복채, 박정억 등이 이끄는 대한학련, 정원식, 장예준, 장순덕 등이 이끄는 건설학련, 조만제, 김충곤 등이 이끄는 삼균주의학생동맹, 윤설학, 송영일 등이 이끄는 중등학생동맹 등 기타 몇몇 학생단체가 참여해 통합단체로 발족했다.

전국통일학생총연맹(김기호, 이원범, 방우영)이 결성된 것이다. 학생조직의 결집을 지향하는 역사적 소명에 부응하면서 학생운동사에 새로운 변화의 장을 열었다. 이밖에 건국학생연맹(조정환, 김영기, 민병두), 이북학생연맹(김재순, 계훈제, 김치선), 반공학생연맹(최남억, 김방호, 박선봉), 함남학생연맹(문재준, 김희조)면학동지회(김득신, 강영훈, 이희호), 조선공제회(강대성, 장익삼, 조상열)등도 각기의 방향을 설정, 학생운동의 통합, 정비를 뒤따랐다.

이들은 국토가 6.25전쟁으로 갈라지자 의용학도대, 비상학도대로 다시 대한학도의용대로 발족했다.

1949년 6월26일 백범 선생의 서거에 전국통일학련은 전국 1백만 학도를 대표하여 즉각 성명을 발표하고 ‘민족의 최고 영도자 백범 김구 선생의 참화는 우리민족사상 최대의 오점이며 선생의 상실은 조국의 앞날에 큰 암영을 던질 것이다. 우리는 광풍으로 지신 선생의 유구한 유지를 계승하여 조국통일 완전자주독립에 일로 매진할 따름이며 저격자는 물론 그 배후조정 관계자는 삼천만 민족의 이름으로 극형에 단죄되어야 한다’고 국내외에 밝히기도 했다.

건국운동 과정에서 한배를 탔던 학생조직이 어느정도 난립되는 양상을 보이기는 했으나 탄생의 동기와 조직 그리고 투쟁의 방향을 짚어볼 때 이들 학생단체들의 가치는 높다고 할수 있다. 또 통합과 정비 과정을 통해 이들 조직은 더욱더 강고한 조직을 재창설하며 북한정권의 사주를 받은 남한내 용공세력들에 항거해 민족진영의 의지를 과시했다.





반공학생총연맹

서북학련이 해체되면서 일부 간부학생을 기간요원으로 하여 1947년 11월20일 서울 YMCA회관에서 결성대회를 가진 반공학생총연맹은 학원 내에서의 강력한 반공활동 전개를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반공학련은 47년초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내무부장이었던 신익희가 조직한 대한반공연맹의 방계 학생조직체로서 총재는 신익희 고문에는 이인을 추대했다.


대한학생총연맹

대한학생총연맹의 일부 학생과 한국학생단의 주도세력이 모체가 되어 1947년 6월 운현궁에서 발족했다. 대한학련은  임정 국가주석 김구를 총재로 했다.

대한학련은 발족 4개월만에 장덕수 암살에 한독당이 가담되었다는 미군정청의 판단에 연류, 해체되고 말았다.


통일학생총연맹

대한학생총연맹이 해체되고 난후 48년 3월 서울 명동 시공관에서 당시 이원범이 이끌던 서북학련과 정원식이 이끌던 대동학생단,  조만재가 이끌던 삼균주의학생동맹 그리고 중등학생동맹 등이 통합, 새로 전국통일학생총연맹을 결성했다.

이들은 백범 김구가 남북협상차 평양에 갈 때 매일같이 경교장을 찾아 북행을 만류하고 땅에 드러누워 읍소했던 단체로 이름이 높다.

전국통일학생총연맹의 발족을 마지막으로 미군정 3년 동안 좌, 우익 학생단체들의  극한적인 투쟁은 일단락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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