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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과 대한민국이 나갈 길은?(특별기고)
김허남(함북 명천) 전 도민연합회장
2013년 04월 26일 (금) 10:59:22 조회수:1797 이북도민회 kbg0070@dreamwiz.com

 

◉ 북한의 핵 장난 - 3차 핵 실험과 협박

 

지난 2월12일 오전 11시 57분 53초에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서 북한은 대한민국을 비롯한 전 세계 국가들의 깊은 우려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3차 핵 실험을 단행했다. 진도는 5.1로 제2차 세계대전을 마무리 지을때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한 원자폭탄의 절반 위력인 10kt(50kt으로 추정하는 부류도 있음) 정도로 추정된다고 한다. 중국 연변에서도 지축의 흔들림을 느꼈으며, 측정된 인공지진은 2009년 2차 핵 실험 당시보다 컸고, 중국 언론에서도 백두산 지역 주민이 1분간 진동을 느꼈다고 보도하여 북한이 이번 3차 핵 실험에 소형화 경량화된 원자탄을 사용한 것이 아닌가 보고 있다.

우리 군 당국자가 북한의 주요지점을 순항 미사일로 선제 타격할 수도 있다고 경고를 하자 북한은 ‘가소롭다’, ‘전쟁 맛을 보여 줄 것’,‘진짜 불 맛, 진짜 전쟁 맛이 어떤 것인지 우리 군의 단숨에 공격 정신이 어떤 것인지 몸서리치게 체험 할 것’,‘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는 등등의 위협을 하고 있다.

근래 들어 연일 게속되는 이러한 뉴스를 접할때마다 필자는 대한민국이 1950년의 6.25 남침전쟁 직전과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것은 기우일까?

 

◉ 키 리졸브 연습과 독수리 연습

 

키 리졸브 연습은 북한군의 기습 남침에 대비한 한미연합군의 연례 훈련이다. 한미연합군은 북한군에 맞서는 작전수행능력 향상, 최대 65만명에 달하는 미국 증원 전력의 한반도 전개, 한국군의 전쟁 수행능력 유지 등을 위해 다양한 시나리오를 가정해 실시하는 ‘지휘소 훈련’이다. 3월11일부터 약2주간 실시하며 한국군은 1만 여명, 미군은 3,500여 명이 참가한다. 이밖에도 유엔군사령부에 참여하는 덴마크, 영국, 호주, 콜롬비아, 캐나다도 일부 병력을 한국에 파병한다.

독수리 연습은 3월1일부터 4월30일까지 실시하며 본격적인 훈련은 3월11일부터다. 1953년 10월1일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 및 정전협정의 정신에 입각하여 이루어지고 있으며 한미 양국군에게 소중한 군사훈련 기회를 제공해 주는 연습이다.

독수리 연습은 실제병력과 장비들이 대거 참여해 우리나라와 그 주변에서 실제훈련을 벌이는 것이다. 한미연합사와 주한미군은 한국군과 함께 지난 몇 달 동안 준비했던 지상기동, 공중, 해상, 해병대 상륙작전, 특수작전 등 20여개의 연합 및 합동 야외 기동훈련을 실시한다. 이번 독수리 연습에는 한국군 장병 20만여명과 대부분 해외에서 증원된 미군 1만여명이 참가한다.

B-52H 전략폭격기, 제3해병 원정군과 원정군에 소속된 고속상륙정, 초대형 수송기 C-5 갤럭시, 강습용 수송헬기 CH-53스탈리온, 중형 수송헬기 CH-46 시나이트, 공기 부양정과 상륙함 등을 갖추고 있는 막강한 전력이다.

 

◉ 나의 고향은 함경북도 명천

 

필자는 함경북도 명천군 아간면에서 태어났다. 이번에 북한이 3차 핵 실험을 한 길주는 명천과 더불어 길주명천지구대로 유명한 곳이다. 남쪽에서 명천을 가려면 반드시 길주를 지나야 했던 곳이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초등학교를 늦은 나이에 3학년으로 입학하여 졸업을 했고, 용저어 공립 제2국민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북간도 복흥천에서 교사로 근무하다가 1945년 8.15 해방이 되면서 고향 함경북도 명천군 아간면 허의초등학교 교사로 돌아왔다. 교사 생활 3개원 만에 책임교사가 되면서 공산당의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 본 후 공산주의에 대한 회의를 느껴 그 해 말 단신으로 고향을 뒤로한 채 서울로 내려왔기 때문에 누구보다 함경북도 지역의 사정을 훤하게 잘 알고 있다.

80여년이 지났건만 어렸을 때 뇌리에 각인된 기억이 점점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은 당시의 경험이 너무나도 충격적인 것이라서 그럴 것이다.

 

◉ 소련 연해주와 근접, 공산주의사상 일찍 침투

 

모두가 아는바와 같이 북한의 서쪽인 평안남북 지역은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기독교 문화가 성행하였던 것과는 달리 함경북도는 지리적으로 소련과 가까워 이미 8.15 해방 전에서부터 공산주의 사상이 많이 침투되어 있었다.

이미 고향 명천과 근접해 있는 연해주에서는 1918년 이동휘, 김입 등이 한인사회당을, 1920년에는 김철규가 한인공산당을 결성하여 활동을 한바 있었다. 그리고 그후 연해주와 국내의 공산주의자들이 결합하여 조선공산당(1925~1928)을 결성하기도 했으니 당연히ㅣ 지리적으로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고 본다.

 

◉ 명천 명신 소년회

 

원래 소년회는 진주 소년회가 1920년에 제일 먼저 등장했다고 한다. 그후 1921년 서울에 천도교 소년회가 만들어 지면서 소년 운동이 본격화 된 것으로 알고 있다. 1922년에는 소년운동협의회가, 1927년에는 조선소년연합회가 조직되어 체계적인 소년운동이 전개된 바 있다.

천도교소년회는 1922년 5월1일 어린이날을 제정하고, 1923년에는 기관지인 ‘어린이’를 발간한데 이어 그해 어린이날에는 ‘소년운동선언문’도 발표했다.

이 소년운동이 전국적으로 전파되어 고향 명천에도 ‘명신소년회’가 조직되었던 것이다. 고향 명천군 지역도 역시 기독교 문화의 유입은 극히 미미했으나 생활개선을 목표로 내걸고 조직된 ‘명천 명신 소년회’가 활동을 하고 있었다.

개선하고자 하는 내용 즉, 명분은 ①조혼반대 ②한민족 전통의 흰 옷은 때를 쉽게 타므로 색깔 있는 옷 입기 ③사치스럽고 호화스러운 관혼상제 하지 않기 등 세가지였으나 실제 내막을 들여다보면 공산주의자들이 뒤에서 조종을 하고 있었다. 순수한 우리민족의 신문화 운동이나 생활개선 의지가 강한 운동이 아니었던 것이다.

당시 고향 명천의 일제에 반대하는 소년운동은 ‘명신소년회’와 ‘천도교 소년단’ 등의 두 가닥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 명천 천도교소년단

 

필자는 명천 천도교 소년단의 한 사람이었다.

천도교 소년단에서는 한복 저고리와 두루마기의 옷고름을 잘라 내고 단추로 바꾸었고, 흰 고무신을 특별히 두껍게 만들어 7~8년 동안 신을 수 있도록 하기도 했다. 또한 1주일에 한 번씩 모여서 토론회, 강연회, 옛날이야기 나누기 등을 하면서 나름대로 정리된 훈련을 받고 있었다.

현대 국어사전에 저의된 독서회의 의미는 ‘책을 읽고 그 느낌과 생각을 서로 말하는 모임’이라고 되어 있다.

1920년대 항일 학생운동으로 조직되어Tejss 독서회는 사회주의 사상을 전파하는 시대의 흐름으로 자리매김을 하여 1930년대에는 학생운동의 핵심이 되기에 이르렀다.

1936년 7월15일자 동아일보 기사에 학생들이 항일운동으로 독서회를 조직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는 내용이 보도된 것을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이 독서회는 반드시 정례모임을 개최하여 모임에서는 사회주의 서적 독서 및 토론을 하도록 되어 있었다.

 

◉ 독서회 활동 명신 소년회는 殺父會

 

공산주의자들은 ‘명신소년회’ 독서회를 통하여 우리 고향 명천 지역에도 그 사상을 전파하고 있었다. ‘명신 소년회’ 는 매일 저녁 8시부터 12시까지 독서회 모임을 가졌다. 내용은 공산당의 역사를 배우고 외우는 것을 주로 하였다. 독서회 모임에 참석한 소년들은 매일 밤 1시가 훌쩍 넘어 귀가해서 잠을 자게 되니 아침 9~10시나 되어야 일어 날 수 있었다. 당연히 부모들은 자녀의 생활 리듬 자체가 깨져 집안일을 돕는데 문제가 생기게 되어 독서회 참석을 반대하게 되었다. 부모 자식간의 갈등이 시작 된 것이다. 자신의 자녀를 독서회에 나가지 못하게 하자 명천 소년회 간부들이 그 집으로 몰려와 부모를 협박함은 물론 폭력까지 휘두르게 되었다. 부모의 반대로 독서회에 나가지 못한 소년은 명천 소년회 간부들의 행패를 집 밖에서 보면서 자신의 부모를 크게 혼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인륜을 져버린, 차마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만행을 일삼고 있는 것을 필자는 여러 번 두 눈으로 똑똑하게 보았다. 그래서 고향 명천에서는 이 ‘명천 소년회’를 심지어 ‘살부회(殺父會-부모를 죽이는 모임)’라고까지 지칭했다.

 

◉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소련과 공산주의

 

필자는 공산주의 지배를 직접 경험한 수많은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그래서 공산당에 대한 매우 좋지 않은 인상을 가지고 있다. 소련 사람들의 성격을 예를 들어 보고자 한다. 아주 친한 친구 둘이서 함께 걸어가는데 한 친구가 다른 친구 주머니에 손을 넣어 주머니 속의 돈이나 물건을 훔친다. 들키지 않으면 꺼낸 친구가 그대로 갖는다. 꺼내는 것을 들키면 장난으로 그랬다고 하면서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미안해하지도 않는다. 즉, 소련사람의 성격은 대체로 체면도 없고, 신사로서의 윤리도 없는 제멋대로 돼먹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다시말하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 소련 사람들의 성격이라는 것이다. 들키면 장난이고 안 들키면 내 것이라는 해괴한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으니 공산주의 이론을 만들어 내고 전파하여 전 세계를 양립시켜 수많은 피를 본 후에야 결국 실패한 이론과 논리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소련 공산당의 역사라는 것도 결국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나라의 패권주의를 위해 다양하고 교활한 방법을 강구해 왔다는 것이다. 그 결과를 확실한 증거로 삼을 수 있는 것이 바로 한반도의 북쪽인 북한을 잽싸게 손아귀에 넣고 지배하여 결국 오늘의 패륜적 국제 이단아이자 고아인 북한으로 만들게 된 것이다.

 

◉ 일본군 무장해제와 열강의 각축

 

일본, 독일, 이탈리아 등 3국이 저지른 세계 제2차 대전이 끝나갈 무렵 전 세계 열강들은 패전국 처리 문제와 피지배국들의 신생 국가로서의 독립이라는 미명하에 검은 속마음을 드러내며 자기 나라의 속국으로 만들려는 심한 각축전을 벌인다.

미국 ‧ 영국 ‧ 중국 등의 1943년 이집트 카이로 회담 및 선언, 크림반도 얄타에서의 1945년 2월 미국 ‧ 영국 ‧ 중국 ‧ 소련 등 3국 정상의 회담, 독일 포츠담에서의 1945년 7~8월 미국 ‧ 영국 ‧ 중국 ‧ 소련 등 정상의 회담 및 선언, 1945년 12월의 미국 ‧ 영국 ‧ 소련 3국 외상회의 등이 그러한 것들이었다.

이 가운데 한반도 문제와 관련된 회담은 1945.2.4~11 얄타에서 미국 ‧ 영국 ‧ 소련 등 연합국 3국 수뇌들이 맺은 협정에 아래와 같은 내용이 언급되었다.

①적절한 시기에 자주독립국이 될 것을 협약한 카이로 선언을 재확인 하고, ②어느 단일 국가에 의한 한국의 군사점령은 강한 정치적 반응을 야기할 우려가 있으므로 한국을 구분될 지역이 아니라 단일체로 취급하여 중앙집권제 행정 원칙에 입각한 군정청을 조직 할 것 등의 내용이 논의되었다.

 

◉ 미국과 소련의 남북한 진주

 

그러나 연합군 참모장 공동회의에서 제2차 세계대전 후의 한반도는 미군과 소련군이 분담하여 점령하기로 약정되었다. 1945년 8월10일 일본이 비로소 무조건 항복할 뜻을 밝히자 미국 국방성은 한반도는 북위 38도선을 기준으로 남쪽은 미군이, 북쪽은 소련군이 주한 일본군의 무장해제 문제를 담당할 것을 제의하여 미국 정부안으로 확정하였다.

그 후 미군은 소련군과 합의하여 미소 양군의 군사분계선으로서 북위 38도선을 책정하였다. 그것이 문서상으로 나타난 것은 1945년 9월2일 연합국 최고사령부 지시 제1호였다. 여기에 북위 38도선 북쪽의 한국에 있는 일본군은 소비에트 극동군 최고사령관에, 그리고 남쪽에 있는 일본군은 미합중국 육군부대 총사령관에게 항복할 것을 명시하였다.

 

◉ 전진을 위하여 일보 후퇴한 소련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미국은 이미 그 당시 일본에 투하 한바 있는 핵폭탄을 보유한 국가였으나 소련은 핵폭탄을 보유하지 못한 국가였다.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북쪽에 진주한 소련군이 남한을 침략하여 점령하고 싶었지만 핵을 보유하지 못하여 힘의 균형에서 열세에 있었으므로 핵을 보유 할 때까지 잠정적으로 남한 침공을 유보하기로 했던 것이다. 핵을 보유한 후에 그때 남한을 다시 침략하여 점령하기로 했다고 한다.

소련은 북한에 진주하여 일본군의 무장을 해제시키는 한편 김일성을 수괴로 하는 공산정권을 세웠다. 소련에 거주하고 있던 한국인들을 북한의 주요 요소요소에 배치를 한 후 소련군은 보유하고 있던 무기 체계 일체를 북한군에 넘겨준 뒤 자기네 나라로 완전히 철수했다. 그리고 소련은 국제회의시마다 자신들이 위도 38도 북쪽에서 철수했으니 미국도 위도 38도 남쪽에서 미군을 철수하라고 강력하고 줄기차게 요구를 했다.

드디어 미국이 한반도 남쪽에서 미군을 철수하기에 이르렀다. 미군은 자신들의 무기를 그대로 가지고 철수하는 바람에 한국군은 일제가 사용하던 형편없던 재래식 무기 체계만을 갖춘 힘없는 허깨비 같은 존재가 되고 말았다. 이것이 민족상잔의 비극인 6.25 남침 전쟁을 일으키는 도화선이 될 줄을 그 누가 알았겠는가?

불과 몇 년 후 소련이 핵을 보유하게 되자 북한 김일성 괴뢰정권을 앞세워 남한을 점령하기 위하여 침략해서 일으킨 전쟁이 바로 6.25 남침전쟁인 것이다. 그 당시 북위 38도선 남쪽인 한국에서 미군이 철수만 하지 않았어도 소련과 북한이 감히 6.25 남침전쟁을 일으키지는 못했을 것이다.

 

◉ 동족이라고 북한이 핵공격을 안 한다?

 

이 기회에 러시아 레닌그라드에 있는 스탈린 동상에 적혀 있는 공산당 관련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어느 가정에서 부모와 아이가 함께 아침식사를 하면서 부모가 공산당을 비판했다. 아이는 학교에 가서 자신의 부모가 공산당을 비판한 것을 담임선생께 말했다. 담임선생은 교장 선생에게 보고를 하고 교장 선생은 당에 보고를 하였다. 공산당에서는 대중을 모아 부모를 단상에 세운 후 아들이 공산주의를 비판한 내용을 폭로하게 한 후 대중 앞에서 총살형을 단행했다. 부모보다 공산당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 이 아이는 위대한 소년이라고 한 것이다. 부모도 모르는 잔인한 집단이 공산당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 주는 교훈이다.

북한 역시 마찬가지이다. 인류 최후의 폐쇄주의 공산정권인 북한이 동족이라고 대한민국을 향하여 핵 공격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아예 버려야 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이에 대한 논란이 많지만 대부분의 한국인은 북한이 동족일지라도 우리에게 핵 공격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점은 다행이라고 본다.

 

◉ 미사일 공격 가능성 농후, 도발 예상 시나리오는?

 

요즈음 들어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ICBM, 대륙간 탄도미사일 여부로 의견이 분분함)발사에 성공(북한 주장)하고, 3차 핵 실험을 하는 등 한반도에서 전쟁분위기를 한껏 고조 시키고 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전문가들도 다양한 견해를 보이고 있으나 그들이 내 놓은 예상은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 탁상에 앉아서 정황만을 분석한 것들이다. 공산주의를 직접 경험한 필자로서는 모두가 공허한 헛구호로 들릴 뿐이다. 공산주의자들은 상식과 정도를 넘는, 감히 상상하지 못할 망동을 하는 집단이라는 것은 전 세계에서 직접 경험한 수많은 사람들만이 터득하여 알고 있다.

북한은 연일 만약 남북한 간의 전쟁이 발발하여 미국이 이 전쟁에 개입한다면 자신들이 개발한 장거리 미사일에 핵탄두를 장착하여 미국 본토를 공격할 것이라고 위협하고 있다. ‘서울 워싱턴 불바다’ ‘핵 찜질’ 운운하여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북한을 예의주시하며 전문가가 예상한 북한의 향후 시나리오 몇 가지를 보면 다음과 같다.

▲ 박근혜 정부를 압박하고 국제 제재에 대해 반발하는 차원에서 북방한계선(NLL) 이남으로 KN-02 같은 단거리 미사일을 다량 발사

▲ 동서해의 미사일 발사나 비무장지대 등에서 국지적 도발을 통해 한반도 긴장상황을 지속시키는 전략구사

▲ 북한이 정전협정 무효를 선언한 만큼 고의로 정전협정을 위반하는 보여 주기식 저강도 도발

▲ 서북5도 점령이나 정전협정이 금지돼 있는 비무장지대 내 화기 무력시위

▲ 북한 상부의 의도된 도발이 아니더라도 우발적 충돌이나 상황이 전면적으로 비화될 위험 - NLL인근의 어선 월선이나 비무장지대 총격전이 전면전이 될수도 있는 상황

▲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교란전이나 주요 국가 시설 사이트에 대한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 공격 등 사이버 공격(이 글이 인쇄중인 2013.3.20 방송국, 은행 등에 대한 사이버 테러가 발생하여 커다란 혼란 초래)

 

◉ 국지전 후 휴전, 대한민국 적화 노려

 

필자가 경험에서 비롯된 북한의 핵 위협 망동과 관련된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북한은 우선 국지전을 도모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 인천, 경기도 북부, 강원도 북부 지역 일부를 공격하여 점령한 후 미국과 중국이 중재에 나서게 하여 휴전을 하고 5~6년 만 지나면 남한 즉, 대한민국을 완전히 적화시킬 것이라고 본다. 미국은 한국에서 전면전이 일어 날 때는 개입이 가능할지 몰라도 국지전이 일어나면 개입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 누구도 믿지 말고 우리 스스로 핵무장해야

 

지난 이야기지만 1945년 8.15 해방 직후 우리 대한민국 사회에 크게 유행했던 우스개 같은 말이 있다. ‘소련에 속지 말고, 미국은 믿지 말라’ 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이 말과 같이 오늘날 우리의 최대 교역국으로 경제 의존도가 가장 높아졌고, 가장 가까운 나라인 중국 패권주의자들에게도 절대 속지 말아야 하는 것은 해방 직후 소련과 마찬가지이다. 미국은 물론 일본과 중국도 믿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미국의 핵우산에 기대하는 것 역시 믿지 말아야 한다. 우리 스스로 박근혜 정부 5년 내에 핵을 보유해야 만이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이 우리와 북한과의 사이에서 중립적인 입장을 취한다거나 미국이 핵우산으로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고 기대하거나 믿는 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일이다.

우리 대한민국은 반드시 북한과 동등 또는 그 이상의 우월한 군사력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도 핵을 보유해야 한다.그 외에 다른 방도는 없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 이라는 국호는 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고 만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알아야 한다.

 

◉ 중국 국공(國共)내전에서 미국의 태도는?

 

영국이나 미국 사람은 본래 실리주의자들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일제 강점기인 1937년 7월 중국에 대하여 일본의 선제공격으로 중일전쟁이 발발했다. 국민당의 장개석과 공산당의 모택동은 2차 국공합작을 이루어 항일통일전선을 형성했다. 1945년 일본의 패망 후 다시 전면적인 내전에 돌입했을 당시의 일이다. 그 해 8월 장개석과 모택동은 중경에서 화평교섭회담을 개최하였다. 이 회담에서 쌍방은 ①내전회피②정치협상회의 개최③각 당파의 평등한 지위 승인 등에 관한 협정을 논의하고, 그 결과 10월10일 ‘국공쌍방 대표회담 기록요강’ 즉, 쌍십협정(雙十協定)을 발표 ‘어떤 일이 있어도 내전을 피하고, 독립 자유 부강의 신 중국을 건설한다’ 라고 합의하였다. 그러나 국민당의 장개석은 미국의 무기와 식량 지원하에 공산당이 제의 한 3차 국공합작을 거부하고 4대1이라는 압도적 군사력을 배경으로 협정을 파기하기에 이르렀다. 1946년 전면적인 내전에 돌입하게 되었다. 이때 미국의 생각은 장개석이건 모택동이건 누가 이겨도 미국의 상품을 많이 사주어 자국 미국에 이익만 되면 좋다는 의미에서 장개석에게 지원하던 무기와 식량지원을 중단했다. 미국의 지원이 끊기고 민중의 지지조차 얻지 못한 국민당의 장개석은 1947년 말부터 공산당의 모택동에게 역전되기 시작하여 대만으로 쫓겨갔으며, 1949년 10월1일 모택동의 공산당은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하였다.

 

◉ 한반도 전쟁 나도 미군 참전 안 해

 

우리의 1950년 6.25 남침 전쟁 때는 이승만 대통령 같은 분이 있어서 우방인 미국이 유엔군과 함께 이역만리 한국까지 참전을 했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그때와 다르다. 오늘날에는 이승만 대통령 같은 분이 없어서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난다 해도 미국이 즉각 참전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

 

◉ 한국인의 7대 불감증

오늘의 우리 한국인들이 잊고 사는 것이 몇가지 있다.

 

1. 북한의 핵무장

북한이 핵으로 무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우리가 한시도 잊어서는 안되는 사실이다. 이미 3차에 걸친 실험을 했고, 4차 핵 실험도 임박했음을 국내외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3차례의 실험을 거치는 동안 소형화 · 경량화, 그리고 플루토늄보다 휠 씬 위험한 고농축 우라늄 핵 개발이 본격화 되었다는 점이다. 북한이 핵을 보유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는 엄청난 위협이자 압박이다.

 

2. 월등한 북한의 군사력

북한 핵 실험이나 북한이 도발해 올 경우 우리의 대응력이나 방법을 언론은 반드시 '한미 양국의 군사적 대응' 이라고 보도한다. 한국과 미국의 지원 군사력을 합치면 당연히 북한보다 우월하다. 그러나 한국의 군사력만을 가지고 북한과 비교한다면 한국이 분명 열세임은 틀림없다. 혹자는 한국 무기 체계의 우월성을 주장하지만 절대 우월하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북한이 숫자상으로는 우세하지만 무기가 낡았고, 우리는 숫자에서 열세이지만 무기의 체계나 질 면에서 앞선다고 하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분명 열세임을 알아야 한다. 북한의 군사력이 월등하다는 것이다.

 

3. 역사 속 잦은 중국의 침략

우리는 흔히 단 한 번도 외국을 침략하지 않은 온순한 민족이라는 자랑을 한다. 반대로 반만년 역사에서 대략 1,000회에 달하는 침탈을 당했다고 한다. 우리의 역사에서 중국의 침략은 수시로 있었다. 족히 100여 회 이상은 될 것이다. 중국은 이미 북한을 자신들의 속국이나 위성국가, 또는 일개 성처럼 생각하고 있다. 대한민국도 역시 자신들의 속국으로 만들려는 생각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인은 역사를 되짚어 중국을 위험한 나라라고 생각하고 드들의 한국 침략은 늘 있었다는 사실을 단 한 순간도 잊어서는 안된다.

 

4. 일제 강점 36년

우리의 역사 속에서 무수히 침략을 일삼은 나라가 또한 일본이다. 아예 주권을 빼앗은 채 36년을 우리 민족에게 족쇄를 채웠던 일본이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쉽게 역사적 사실조차도 이해하지 못한다. 일제강점기를 겪은 세대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직접 겪은 세대들은 그 시대의 암울했던 사회상황이나 시대의 조류를 알지만 겪지 않은 세대에게는 먼 남의 나라 이야기로 들릴 뿐이다. 비록 경험은 하지 못했지만 절대로 이러한 역사적 사실 또한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왜 나라와 주권을 잃었었는지를 되새기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5. 모래알 한(韓)민족

일본 사람들은 우리 한민족을 흔히 모래알 같은 민족이라고 비하 한다. 한국인 개개인은 아주 똑똑한지만 집단으로는 단결이 되지 않고 분열된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가장 심했던 민족적 분열은 1945년 8.15해방 후 좌우, 남북의 분열이겠지만 이조 시대의 사색당파 싸움도 분열의 극치를 보여준 예라 하겠다. 일제의 식민사관 교육에 의하여 우리 민족 스스로를 비하하도록 교육하는 가운데서 나온 자학이라고 하는 주장도 있으나 반드시 그렇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 만큼 단결이 되지 않는 민족임은 맞다. 국가나 집단, 단체를 우선하기 보다는 개인을 우선시 하는 국민성 때문에 잘못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최근의 정국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3차 핵실험을 한 후 남한을 언제라도 침략할 것 같이 협박을 하고있다. 새 정권 출범 후 2개월이 되도록 여야가 싸우면서도 북한 핵의 위협에는 전혀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으니 과거 이조시대의 당파 싸움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물론 한국인은 평소에는 개인의 이익을 우선하다가 위기가 닥치거나 결정적일 때는 단결하는 응집된 힘을 발휘한다. 위기가 아닌 평소에 개인의 이익보다 단체나 집단, 국가를 우선하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6. 노루 같은 한국인

일본 사람들이 또 한국인을 '노루같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대한민국이 작신들의 속국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가지고 있는 것이 일본인이다. 노루는 성격이 매우 온순한 편이나 겁이 많다. 빠른 질주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적이 보이지 않으면 정지하여 주위를 상피는 습관이 있어 호랑이, 표범, 곰, 늑대, 독수리 등에게 자주 습격을 당한다고 한다. 바로 이러한 성격이 한국인과 같다고 하는 것이다. 계속하여 질주를 하면 범 등에게 잡혀먹지 않는데 질주를 하다가 범 등이 보이지 않으면 정지하여 뒤돌아보거나 주위를 살피니 잡혀 먹고 마는 것이다. 한국인 역시 하던 대로 소신껏 끝까지 계속하면 이길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는데 중간에 자꾸 타협을 하려고 하니까 결국은 실패를 하거나 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깊이 반성하고 심각하게 생각해 볼 문제이다. 역시 잊지 말고 반추해야 한다.

 

7. 잘 살고 있는 한(韓)민족

우리 민족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잘 살고 있다는 점을 자주 망각하고 있다. 전세계 어느 곳에 이렇게 짧은 순간에 국부를 축적하여 일취월장하는 민족이 있단 말인가? 이러한 우리 민족의 세계적 위치를 잊어버린 채 아직도 가난과 문맹에 허덕이는 저개발 국가의 국민인 양 생각하고 행동하는 국민이 있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크게 각성해야 할 일이다.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어디를 가든 우리 민족이 절대 뒤지거나 빠지지 않는다는 점을 긍지로 삼아야한다. 전 세계 곳곳에 진출하여 억척스런 개척 정신과 끈기 있는 집념으로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7백만 우리 한민족이 글로벌화에 앞장서고 있지 않은가 ? 어느 민족과 비교해도 비교적 잘 살고 있는 민족이자 국민이라는 것을 잠시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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